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옆에서 1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고사 위기에 놓였다. 나무 밑동 주변에 전동드릴로 여러 개의 구멍을 뚫고 약물을 주입하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되면서 논란은 단순한 민원을 넘어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주민들은 지난 5월, 한창 푸르러야 할 은행나무의 잎이 급격히 변색되고 떨어지는 모습을 이상하게 여겼다. 이후 나무 주변에서 인위적으로 뚫린 구멍과 약물 주입 흔적이 발견됐고, CCTV에는 조경업체 관계자들이 나무에 약물을 주입하는 모습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 옆 은행나무를 살피고 있는 주민들(사진=서울환경연합)◇
주민들과 서울환경연합은 환기미술관 측이 조경업체를 통해 제초제 등을 주입해 나무를 고사시켰다며 재물손괴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또한 사용된 약제의 성분을 공개하고 나무를 살리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약품의 종류와 성분은 공개되지 않았고, 주민들은 토양과 수질 오염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다.
반면 환기미술관은 사과문을 통해 수년간 은행나무 뿌리로 담장이 훼손되고 보행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고 설명했다. 여러 토지 소유주와 해결 방안을 모색했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사실관계와 책임 소재는 수사를 통해 가려질 일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던지는 더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었느냐는 것이다.
시설물 안전이 문제였다면 담장을 보강하거나 이전하는 방법은 검토됐는가. 뿌리를 훼손하지 않는 공법이나 담장 재설계는 가능하지 않았는가. 전문가 자문을 거쳐 가지치기나 지지대 설치로 위험을 줄이는 방안, 필요하다면 이식 가능성까지 충분히 검토했는가.
수목 전문가들은 오래된 나무를 제거하는 일은 다양한 보존 대안을 충분히 검토한 뒤 선택해야 할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특히 수령 100년이 넘는 나무는 단순한 조경수가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생태를 함께 품은 자산이기 때문이다.
◇서울 부암동 주민들이 손글씨로 은행나무를 살려달라고 써넣은 모습 (사진=서울환경연합)◇
더욱 아쉬운 대목은 약물 성분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약제가 얼마나 주입됐는지조차 확인되지 않는다면 적절한 응급조치나 회복 방안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시민들이 불신을 거두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사건은 특정 기관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과 안전, 그리고 오래된 생명을 어떻게 공존시킬 것인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준을 묻는 사례다.
시설물은 보수하거나 다시 세울 수 있다. 담장도 이전하거나 보강할 수 있다. 그러나 100년의 시간을 견뎌온 나무는 한 번 잃으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안전은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안전을 확보하는 방식이 언제나 생명의 희생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부암동 은행나무 논란이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보존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결국 담장은 다시 세울 수 있지만, 100년의 생명은 다시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찐뉴스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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