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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3일, 또다시 봄이 왔다.
그날도 봄이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제주도의 중산간 마을들은 불길에 휩싸였다. 군경의 총구는 민간인을 향해 있었고,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마을 주민들이 ‘빨갱이’라는 이름 아래 학살당했다. 그렇게 제주도의 봄은, 오랫동안 피 냄새로 기억되었다.
제주 4·3 사건이란 무엇인가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로 시작되었다. 제28회 3·1절 기념식에서 평화롭게 시위를 벌이던 군중을 향해 발포가 이뤄졌고, 민간인 6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제주 전역에서는 미군정과 경찰의 탄압에 대한 저항이 본격화된다.
1948년 4월 3일,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하던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경찰서를 습격하며 무장봉기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진압 작전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국가폭력으로 이어졌다.
진압군은 ‘빨갱이 소탕’이라는 이름 아래 산간 마을 전체를 초토화시켰고, 주민들은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고문과 총살, 불태움으로 학살당했다. 군과 경찰, 서북청년단, 그리고 국가가 총동원된 학살이었다.
약 7년 동안 이어진 이 사건으로 공식 집계된 희생자만 1만 4천여 명. 그러나 실제 피해 규모는 그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대다수가 비무장 민간인이었다.
‘사건’이 아닌 ‘학살’로 기억되어야
4·3은 단지 ‘사건’이 아니다. 명백한 국가폭력이며, 수많은 시민이 아무런 죄 없이 국가에 의해 희생된 집단 학살이다.
2000년 제정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 2021년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수형인들까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진행되어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묻지 못한 이름들과 마주하고 있다.
'기억’을 넘어서 ‘행동’으로
4·3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거울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4·3을 기억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억압과 혐오, 배제의 목소리에 민감해야 한다.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침묵에 눈감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을 말한 자들이 죄인이 되는 이 사회에서, ‘말하는 용기’를 전승하는 것이야말로 4·3을 이어가는 일이다.
우리에게 남은 몫
4·3을 단지 제주만의 비극으로 남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뿌리 깊은 상처이자,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기준선이다.
오늘의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피해자들의 존엄이 온전히 회복되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유해발굴과 국가배상, 교육과 진상규명이 철저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기억은 의무다. 그러나 진실을 행동으로 이어가는 것, 그게 오늘 우리가 4·3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찐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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